책/비문학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 [채식의 배신]

꿈 많은 달토끼 2014. 9. 9. 18:06

리어 키스,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 [채식의 배신]The Vegetarian Myth: Food, Justice, and Sustainability 부키, 2013

 

 
요즘 음식에 대한 말들이 정말 많다. 하룻동안에 블로그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의 수는 얼마나 될까. 또 티비의 요리 프로그램,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고발 프로그램, 건강식에 관한 프로그램, 음식기행 다큐 등등 채널을 돌릴 때마다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서점에도 요리책과 식이요법 등을 담은 책들이 어마어마 하다. 멋진 분위기에 맛집이라 소문난 식당, 까페에 대한 정보가 즐비하고 대형마트에는 아스파라거스 같은 생소한 것들을 포함한 식재료들이 넘쳐난다. 천국이다. 맛있는 것이 넘쳐난다. 나도 데이트를 하면서 그 천국의 맛에 눈을 떳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오랫동안 앓아온 목부분 아토피를 고쳐보려고 한의원을 찾았다. 지인이 아토피가 심했는데, 그 한의원을 다니면서 싹 나은 것을 보고 그 다음날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 한의원은 체질을 8가지로 나누고 체질에 따라 엄격한 식이요법을 할 것을 권했다. 식이요법은 물론 평생 계속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가 막혔던 것은 내 체질이 푸른 잎 채소와 쌀밥, 해산물 외에는 거의 허용되는 것이 없는 체질이라는 것이었다. 한의사의 말에 따르면 나는 어떤 종류의 고기도, 밀가루도, 우유나 치즈도, 버섯, 호박, 콩, 모든 뿌리채소도, 견과류도, 미역도, 달걀도, 마늘도, 모든 기름도 허락되지 않는 체질이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채식동물의 후예이기 때문에 푸른 풀을 주로 먹어야 된다고 했다. 반신반의한 기분이었지만 그동안은 전혀 시도해 본 적이 없던 방법이었기에 어쨌거나 나는 한번 그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시금치나 양상추, 양배추 같은 것과 메밀이나 녹두를 섞은 밥으로 한달을 나 보려고 했던 것이다. 해산물은 방사능 때문에 여전히 마음 놓고 먹질 못하고 있다. 매끼를 먹을 때마다 음식 천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외식은 정말로 힘들었다.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메밀국수 정도.. 그나마 밀가루가 훨씬 많이 섞였다는 것을 알고는 그만 두었다. 단무지와 당근, 우엉, 햄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김밥 같은 가장 쉽고 친근한 메뉴조차 꺼렸다. 

그 한달 동안, 거의 좋아지질 않았다. 그 동안 여러가지 의문만 무성히 자라났다. 나는 도서관에서 음식에 관한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너무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난립했다. '로푸드'라는 새로운 음식 문화도 알게 됐다. 채소의 효소가 파괴되지 않도록 가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가열하지 않은 채소 안에 독소가 몸을 망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유 하나만 보더라도 우유가 몸에 좋다는 쪽과 오히려 몸에 나쁘다는 쪽의 주장이 팽팽히 엇갈리는 걸 보면 아직도 명확히 정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채식의 배신]은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이 책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있어 '먹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음식의 맛과 멋, 인간의 건강이라는 우리가 음식을 바라보았던 좁은 관점들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우리가 먹는 행위가 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넓게 볼 것을 요구한다. 저자인 리어 키스는 급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 자신의 신념을 위해 20년이나 비건(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직접 농작물을 키우면서 자신의 신념에 반대대는 뼈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식물 또한 동물의 시체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농사'가 지구를 사막화시키고,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없애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녀는 엄격한 채식이 오히려 몸을 망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그녀의 몸을 통해 증명 되었다. 또한 그녀의 주장은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그리고 인간의 소화기관을 비교했을 때 우리가 육식동물에 더 가까운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자료 등등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사'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평지는 건물이 들어서 있거나 논밭이 되어 있다. 이렇게 인간이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데, 동물들이 살 곳이 어디 있기나 하겠는가. 문제는 화학연료를 이용한 비료를 통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농업이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동물들을 몰아냈지만, 우리도 언젠가 비슷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땅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 식물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영양소를 대어줄 화학연료마저 바닥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콩과 두유는 몸에 좋다' 같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믿음을 뒤집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도 다 믿지는 말라고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내가 먹는 것들은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너무 몰랐다. 우리는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을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음식은 영혼과 육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한입 한입이 우리의 몸과 정신이 되는데,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해서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많은 의문들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수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가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들려준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발췌. 

16p
이 책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잘 안다. 나는 거의 20년을 비건(vegan, 유제품, 달걀류 등을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사람. 단순 채식주의보다 더 철저함-옮긴이)으로 살았었다. 애초에 그렇게 극단적인 식생활을 하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고귀하다고까지 할 만한 이유....... 정의감, 연민, 그리고 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절박한 갈망에서였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 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나무, 큰소리한번 내 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가는 생물들을 품고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 나가는 미개척지 한 조각이라도 지켜 내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힘없는 자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굶는 이들을 먹여 살리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끔찍한 공장형 축산에 가담하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이 정치적 열정을 낳은 갈망은 너무도 깊어서 거의 종교적 경험에 가까웠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삶이 전쟁터이자 전투의 함성이기를 원하고, 가부장제, 제국주의, 산업화, 그리고 모든 형태의 권력과 가학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화살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이미지가 너무 호전적인가? 그러다면,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나는 내 생명, 즉 내 몸이 이 땅을 먹어 치워 망하게 하는 주체가 아니라, 이 땅을 길러 내는 곳이 되기를 원한다. 가학이 발붙일 수 없는 곳, 폭력이 멈추는 곳 말이다. 그리고 생명을 길러 내는 과정의 첫걸음인 먹는 행위가, 살상이 아니라 보존의 행위가 되기를 원한다.

43p
생명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한 텃밭 가꾸기. 텃밭을 가꾸겠다는 아이디어는 동녘에 떠오른 햇살처럼 나를 찾아왔다. 우울증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뭐가 마음에 느낌이 오게 하는 것이면 기적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텃밭이 그랬다. 온 세상이 단조롭고 잿빛으로 보이던 때 내게 다가온 생명이었다. 그리고 초록으로 넘쳐났다. 촉촉한 천에 작은 씨 몇개를 감싸뒀더니 이틀 뒤 수줍은 희마어럼 작은 손가락들이 나를 향해 뻗어났다. 살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고, 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뉴잉글랜드 지역으 길고 긴 밤을 무거운 이불을 쓴 채, 가끔 잦아들 뿐 결코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 육체적 고통을 견디며 지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삼킬 듯 사방을 둘러쌌던 우울증과 허기짐은 또 어땠는가. 이불 밖의 적대적인 공기로는 내 머리와 한 손만이 나와 있을 뿐이었다 .그 소에 씨앗 주문 카달로그가 들려 있었다. 마치 관대한 처분을 우원하는 하얀 깃발과도 같이. 그리고 텃밭은 내게 관대했다.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무언의 초록색 합창, 나와 내 고통을 뛰어넘는 더 거대하고 끝없는 생명의 순환을 갈망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텃밭에서 위안을 찾았고, 매년 봄 다른 도움 없이도 갑자기 움을 틔어 나를 놀래는 제비꽃과 수레국화에서 기쁨을 얻었다.

289p
전쟁 포로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풀려난 후 기념 만찬을 하는 모습이다. 고기, 채소, 빵, 파이, 샐러드, 디저트, 신선한 과일 등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음식이 뷔페 상에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의 손이 제일 먼저 간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버터, 마가린, 샐러드유, 크림 등이었다. 모두 지방을 원했던 것이다. 그 순수한 지방 음식만 담은 접시가 완전히 빌 때까지 다른 음식에 손을 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는 포로수용소와 같은 끔찍하고 처절한 상황에 처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런 경험을 아는 척하는 것 자체가 당사자들에게는 모욕일 것이다. 그러나 지방을 향한 육체적인 갈망, 그 물질에 대한 원초적 욕구... 그렇다. 그건 낯익은 느낌이었다. 머리를 어디엔가 처박고, 숨을 멈추듯 몸에 필요한 지방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보라. 그 순간엔 공기보다 지방을 더 원하게 될 것이다. 지방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느낌이 들고, 한 입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안도감은 정말이지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싶고, 다른 아무것도 이걸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것이다.
 

Lierre Keith

목차.
머리말...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는가?
1.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1) 농업의 본질은 파괴다
  2) 동물은 안 되고 식물은 된다?
2.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3) 현대소는 옥수수를 먹고 큰다
  4) 사람이 너무 많다
3.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는 것들
  5) 지방에 새겨진 주홍글씨
  6) 만병통치약 콩의 진실
  7) 채식주의자들을 찾아오는 식이장애
맺음말... 세상을 구하려면

http://www.lierrekeith.com/ 리어키스의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