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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빨강! 마크 로스코에 관한 연극 [레드]

꿈 많은 달토끼 2014. 4. 10. 21:14

존 로건 원작 [레드]
출연: 강신일, 강필석 / 2013.12.21~2014.1.26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작품설명. (공연소개에서 발췌)
연극 [레드]는 작가 존 로건이 미국 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를 소재로 창조한 작품이다. 혁신적이면서도 탄탄한 작품의 산실로 유명한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 프로덕션'이 제작하여 2009년 런던에서 초연되었으며, 2010년에는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제 6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등 주요 6개 부문을 휩쓸며, 토니상 최다 수상작의 영예를 얻은 수작이다.

줄거리. (공연소개에서 발췌)
1957년 추상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고급 레스토랑인 '포시즌'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벽화를 그려준다. 자신의 조수를 자처한 켄에게 그는 물감을 섞고 캔버스를 짜는 단순한 일만을 주문하지만, 켄은 당돌하게도 로스코의 예술이론과 상업적 프로젝트인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작업을 수락한 데 대해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놓는데...

-지인의 손에 이끌려 아무런 정보없이 [레드]를 보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크 로스코'는 실존화가였으며 미국의 현대 추상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본인은 자신이 '추상화가'가 아니라며 "나는 색채나 형태 등의 관계에 아무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고 했지만 말이다. 그의 말대로 로스코의 그림들은 분명히 보는 이에게 어떤 감정을 촉발시키는 것 같다. 색채나 형태 등의 관계에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그가 사용한 색채들은 어떤 즐거운 느낌이나 흥분, 불안... 같은 감정이 들도록 눈에서 가슴으로 곧장 전달이 된다. 또 경계가 뭉그러진 사각형의 형태들은 원이나 타원, 세모 등의 어떤 형태보다도 마음을 안정시켜 편안히 그림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 연극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이제껏 없었다. 아마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스스로 창작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연극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사막의 샘처럼 달게 느껴질 것이다.  그 모든 대사들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군더더기는 전혀 없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듣지 않으면 귓바퀴에 튕겨 버리고마는 알맹이가 단단한 대사들. 정확히 인용할 수 없지만 '요즘 사람들은 즐겁고 명랑하고 밝은 것만 찾는다, 앤디워홀의 수프캔이나 만화같은...하지만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야. 예술은 즐겁고 명랑하고 밝은 것 뿐만이 아니라 고통, 우울, 당혹, 죽음 같은 것도 포괄하는 거다' 라는 내용을 담은 대사들은 단숨에 와서 꽂혔다. 최근의 화려하고 요란하고 예쁜 것에만 치중하는 문화-블로그나 음식사진, 풍경사진 같은 내용은 없지만 예쁘장한 사진들, 기행 프로그램 등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연극의 무대는 대화가의 작업실이다. 화가 로스코는 조수 켄을 부리며 250억 상당의 비싼 그림들을 그린다. 하얗고 넓은 캔버스에 그 둘은 레드를 칠한다. (레드는 그냥 레드가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기에 따라서 동맥에 흐르는 피가 될 수도 있고 금속에 슨 녹이 될 수도 있고 떠오르는 태양이 될 수도 있다.) 설마했는데 두 배우는 힘차게 팔을 놀려 하얀 캔버스를 빈틈없이 붉게 칠했다. 정말 역동적인 장면이었다. 붉은 색이 흰색을 순식간에 먹어버리고, 그것을 행하는 힘찬 팔과 붓의 움직임이 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힘이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표현된 장면이었다.  

 

- 연극의 줄거리는 화가 로스코의 삶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에서 착안되었다. 예술의 상업성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로스코가 거액의 돈을 받고 부자들이 들락거리는 현대적인 레스토랑에 걸릴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잡다한 일을 도울 조수 켄을 고용하는데... 괴팍한 성격의 로스코는 켄에게 예술과 그림 철학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도 켄의 말은 한마디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켄은 점점 로스코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품으며 그에게 대담한 질문들을 던진다. 로스코는 자신이 그 그림들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그림들만을 위한 예배당'을 운운하는데 켄은 정면으로 그런 말들을 공격한다. 로스코는 마침내 자신이 그 그림들을 그곳에 두어 그곳에 밥을 먹으로 오는 자본에 찌든 사람들의 입맛을 떨어뜨리게 하려고 했다는 진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속내를 드러낸다. 켄은 어떻게 그림들에게 그런 가혹한 짓을 할 수 있느냐며 놀란다. 얼마 후, 그 레스토랑에 직접 다녀온 로스코는 그곳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 이외에 벽에 걸린 그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계약을 파기한다. 극의 중반 쯤 로스코는 '잭슨 폴록'의 죽음에 대해서 '예술을 엄청나게 진지하게 대했던 그가 상업적인 대 성공 이후 자신의 그림을 제대로 보아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게으른 자살'을 택한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극 중에선 그의 자살을 보여주지 않지만 실제 로스코는 그가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했던 시기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 마지막으로 강신일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괴팍한 예술가 그 자체였고 그 많고 어려운 대사들을 100분 내내 거의 쉬지 않고 쏟아내는 그 에너지를 한껏 받았다. 오랫동안 박수를 멈출 수 없었다.